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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산ㆍ계곡] 양평 용문사의 은행나무
  • 등록일1999-01-25
  • 작성자 / 김**
  • 조회6417
소 재 지 : 경기도 양평균 용문면 신점리 산 99
소 유 자 : 민유(용문사)
숲 길 이 : 258㎡
우 점 종 : 은행나무
수 고 : 62m
흉고직경 : 14m
임 령 : 약 1,100년
수 관 폭 : 약 28m
지 하 고 : 약 12m
보호지정품격 : 천연기념물 제30호(''62.12. 3 지정)
지 정 사 유 : 노거수 용문면사무소에서 북동쪽으로 6번 도로를 따라 약 2km 정도 지나다가 다시 용문산 자락에 자리잡고 있는 용문사를 향해 약 7km 정도의 깊은 계곡을 따라 오르면 표고 300m 지점에 용문사가 나타난다.
용문사 경내에 위치하며 경사완만한 작은 평탄지로서 나무 옆으로는 좁은 계곡이 흐르고 나무주변에는 보호철책을 설치하여 사람들의 접근을 막고 있지만 오랜 세월동안 비바람에 표토사 씻겨져 독특한 모습의 뿌리가 노출되어 있다. 우리나라에 있는 은행나무중 가장 큰 노거수인데 최근에는 천수를 다 누렸는지 수세가 점점 쇠약해져서 나무에 영양제 등을 주사하고 있다. 수세가 건전할 때는 연간 5∼10가마 정도의 은행을 수확하였지만 최근에는 1∼2말 정도밖에 거두지 못한다고 하는 등 수세가 현저하게 쇠약해져 가고 있다.
양평군 당국에서는 이 노거수가 고사하기 전에 후손을 퍼뜨리고, 지역주민들의 소득을 향상시키면서 관광객도 유치하기 위해 이 나무의 열매로 [용문사 은행나무]의 묘목을 생산해 관광객들에게 분재용으로 판매하고 있다.
이 은행나무는 신라의 마지막 임금 경순왕의 세자였던 마의태자가 나라를 잃어버린 슬픔을 안고 금강산으로 가는 길에 심었다는 전설을 간직하고 있다. 또 한편으로는, 신라의 고승 의상대사가 짚고 다니던 지팡이를 꽂은 것이 자라 이 은행나무가 되었다고도 전해지는데, 어쨋든, 용문사는 신라 신덕왕 2년(913년)에 대경대사가 창건하였다고 전해지므로 이 절을 짓고 대웅전앞에 심었다면 이 나무의 수령은 천년이 훨씬 넘어선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각종 전설을 간직한 노거수로서 옛날 어느 사람이 이 나무를 자르고자 톱을 대었을 때, 톱자리에서 피가 쏟아지고 맑던 하늘에서는 천둥이 일어나 중지했다고 전한다. 정미의병이 일어났을 때는 일본군이 절에 불을 질렀으나 화를 면하고 지금까지 버텨오고 있다. 또한, 8.15광복, 6.25동란 등 나라에 큰 일이 있을 때마다 소리를 내 울었다고 전하며, 고종께서 승하하셨을 때에는 커다란 가지 하나가 부러졌다고 하는 등 신령스러운 나무로 인식되어 숭배의 대상이되고 있다. 조선조 세종대왕때는 정삼품보다 높은 벼슬인 당상연첩을 하사받기도 한 명목이다.

┌─────┐학명 : Ginkgo biloba L.
│ 은행나무 │한명 : 은행목, 공손수
└─────┘영명 : Maidenhair tree
낙엽침엽의 교목으로서 제주도 및 해변을 제외한 전국에 분포한다. 자웅 2가화로서 10월에는 황색의 열매를 맺는데, 종자는 식용 및 약용으로 쓰이고 최근에는 은행잎에서 추출되는 플라보노이드 및 테르페노이드라는 성분이 고혈압, 심장병 등의 약제원료로 각광받고 있다. 은행나무가 지구상에 처음 나타난 것은 약 3억 5천만년전으로서 [살아있는 화석]이라고도 일컬어지며, 우리 생활 주변에서도 노거수들 중에 가장 많이 남아있는 수종이다.
은행나무는 병해플이나 각종 공해에 저항력이 크며, 웅장한 수형, 노랗게 물드는 단풍 등이 아름다워 가로수, 정자목으로 많이 식재되고 있다. 은행나무의 영명은 금발 처녀의 머리카락처럼 단풍이 아름답다 하여 붙혀진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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